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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년 경단녀 취업에 성공한 찐 경험담> 인생의 2막 설계!

by growth1979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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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공과 처음 시도한 직업

 

20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 후 바로 청소년상담소에서 1년 정도 일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학부모 상담, 사이버상담, 전화 상담을 병행하였습니다. 

 

2.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우울

 

청소년 상담소에서 일하던 중 첫째를 임신하였고 자연스럽게 출산 이후 경력 단절을 경험하였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고 26살에 엄마가 되었기에 주변에 함께 육아를 공유할 친구들도 없었습니다. 홀로 섬에 갇혀 사는 듯한 외로움과 무기력, 낮은 자존감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3. 둘째를 임신하고 시작된 고비, 충격

 

순한 첫째 아이를 기르면서 차차 우울감에서 회복되어 가면서 이왕 아이를 키우는 김에 하나를 더 낳아서 빨리 키우고 일을 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 14개월 즈음 둘째를 임신하였고 12주가 되어 안정기가 찾아왔지만 갑작스럽게 양수가 새는 고비를 맞이합니다. 흘러내신 양수의 양이 너무도 많았고 양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던 중, 의사로부터 낙태를 해야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눈으로 잠에 들며 울부짖었습니다. 

 

4. 절대안정과 조산, 우울, 두려움, 임신성당뇨. 

 

다행히 양수가 극적으로 멈추었고 부족한 양수도 조금씩 채워져갔습니다. 뱃속 아기의 상태는 건강하다고 하였지만 기형아 검사에서 이분척추 경계라는 수치를 받고 재검을 받게 됩니다. 절대 안정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산 전까지 누워있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몸은 쇠약해지고 지쳐갔습니다. 임신성당뇨 진단을 받아 식단 조절까지 해야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계속되는 두려움과 답답함, 무기력감에 우울감이 생겼지만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고 35주만에 3.02kg 의 아기를 만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5. 계속되는 아픔들, 유산

 

절대 안정과 조기출산, 임신성당뇨 등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었으나 둘째는 잠도 많고 사랑스러운 아가였습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순둥이였고 특히 밤에도 잘 깨지 않았습니다. 다시 둘째가 돌이 지난 즈음, 아기를 한명 더 낳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고 임신을 하였지만 조기 유산을 경험합니다. 소파 수술을 마치고 몸이 회복되는 즈음 다시 임신을 하였지만 또 다시 유산을 하게 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주위에서는 약해진 몸을 생각하여 이제 아기를 낳지 말기를 권유하였으나 저는 세명의 아이를 키우고 싶은 소망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다시 임신을 하여 건강한 딸을 출산하게 됩니다. 35주에 조기 출산이었지만 둘째 때와 마찬가지로 3.0 kg 의 건강한 아기를 만납니다. 셋째 때는 인슐린을 맞아야할만큼 임신성당뇨 수치가 나와서 고생을 하긴 했지만 건강한 아가를 만난 것으로 기뻤습니다. 

 

6.  시작된 산후 우울증

 

산후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던 중 사이버대학으로 편입을 하여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셋째가 두돌 즈음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실습을 하게 됩니다. 우울한 기간동안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공모전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맛봅니다. 특히나 서울시 에세이 우수상을 받고 모 출판사에 제출한 수기가 1등을 하게 되면서 글이 실리는 행운을 맛봅니다. 자격증에도 도전하여 2~3가지 자격증을 취득하고 막내가 5살이 되던 즈음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합니다. 

 

7. 번번히 포기하게 되는 일들, 계속되는 경력단절과 취업의 어려움.

 

자격증도 취득하고 여러곳에 취업의 문을 두드리며 노력했지만 오랜 경력 단절로 자신감도 적었고 무엇보다 경력이 너무 적다보니 이력서에 쓸 내용이 없었습니다. RT 중재 전문가 자격증을 따고 그쪽으로 활동을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가지로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왜 이리 취업이 안 될까?" "나는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장애아동 발달지원센터에 인턴으로 취업을 하여 1년이 조금 못 되게 훈련을 받으며 한달에 50만원 정도 버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시간적으로 세 아이를 기르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라서 힘들고 지쳤고 박봉이었지만 지속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긴장도가 높았고 무엇보다 우울감에 지친 어린 엄마들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무엇보다 장애 아동들을 억지로 훈련시키고 반복적인 습관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혹사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훈련이었지만 저에게는 정말 맞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저를 좋아했고 못 걷던 아이가 걷게 되고 말을 못하던 아이가 말을 하는 기쁨도 맛봅니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방식이 저하고는 맞지 않아서 힘든 것도 컸습니다. 

 

8. 새로운 도전, 세아이와 함께 떠난 6개월 해외생활

 

좋은 기회가 생겨서 세 아이와 함께 해외생활을 하게 되었고 다시 경력이 단절됩니다. 후회는 없었습니다. 제가 일한 곳에서 만난 아기들은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뻤지만 저의 성격과 너무도 맞지 않는 지속적인 반복 훈련 등으로 저의 몸도 마음도 지쳤던 때였습니다. 세 아이와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는데 일조하게 되었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다인종 엄마들과 어울리면서 행복한 추억을 쌓게 됩니다. 유럽에 있던 나라여서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 여행처럼 여행을 갈 수 있었기에 후회없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9. 다시 직업에 대한 소망이 생겨나다. 그러나 코로나 시작! 그래도 살 구멍은 있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이후 아이들 학교 적응이 끝날 즈음,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 시작합니다. 자격증에 도전하고 공모전에도 참여하면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전 세계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저는 더더욱 취업의 문이 좁아짐을 느낍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거의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사춘기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들의 사춘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가정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친밀해지고 나름대로 그럭저럭 잘 지나가게 됩니다. 충분히 쉬고 함께 하는 시간들을 통해 소통하면서 때로는 화내고 싸우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코로나 때는 원형 탈모도 왔었습니다. 외출도 어렵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코로나 때 했던 것들>

 

1) 유튜버 되다.

 

그때 저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집에서 유튜브를 하나씩 보게 되었고 저도 "유튜브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편집 기술을 무료 영상들을 보면서 독학으로 배우면서, 조금 많이 어설프게 시작한 첫 영상 업로드. 저는 세 아이 육아경험을 위주로 제가 배우고 일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부모교육, 육아 유튜브 영상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구독자는 안 늘다가 770명 정도 늘기 시작합니다. 

 

2) 브런치 작가가 되다.

 

또 도전한 것은 브런치스토리였습니다. 원래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도전을 하게 되었고 몇 번 승인에서 떨어졌지만 지속하여 결국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3) 자격증을 취득하고 교육을 듣다.

 

한국어교원자격증 취득, 푸른나무재단강사위촉, 한국가이던스강사위촉,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부모양육코칭강사가 됩니다.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에서 2급과 1급 자격증 과정을 수료하고 여러가지 교육을 들으면서 강사 준비를 본격화합니다. 

푸른나무재단 강사 과정이 처음 강사 도전이었는데, 정말 좋은 기관이었으나 강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번 재시연을 통해 어렵게 합격이 되었지만 지방 출강이 부담이 되었던 저는 몇 번 활동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그만두게 됩니다. 이때도 세 아이가 마음에 걸려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나의 취업에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시 이런 생각으로 바뀝니다. "아니야. 아이들이 우선이고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까 내가 일할 기회가 다시 열릴거야. 아깝지만 내려놓자." 더 좋은 기회가 열릴거라고 믿고 싶었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4. 현재

인성교육강사, 대학교육강사, 부모양육코칭 강사, 시니어강사가 되다. 

 

그렇게 푸른나무재단 강사를 그만두고 1년의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인성교육강사, 청소년심리검사 강사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인성교육에서는 협회 칼럼 작가로도 활동하며 글을 올리게 되었고 심리검사 기관에서는 우수강사로 선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초보강사이고 긴장도도 크며 실수하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강사지만 꾸준히 강의를 하면서 자신감도 회복되고 앞으로에 대한 소망과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는 언니가 이야기를 해줍니다. "조금 부족해보이더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이 오래 생각하면서 완벽하게 하려는 사람보다 결국은 더 탁월하게 될 거야." 라고요. 저는 그 말에 위로를 받고 출강 기회가 있으면 조금 멀고 조금 힘든 곳이라도 되도록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람도 큽니다. 

 

5. 다양한 중년의 도전들, 생각보다 열려있는 기회들! 

 

<제가 도전하는 것들> 

 

이모티콘 그리고 강좌를 우연히 참여하게 되면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인스타에 캐릭터와 신앙관련 그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로그 만들기도 클래스 101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고 서초 50플러스 센터에서 시니어 강사과정도 밟아서 IT센터에서 보조강사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40대 중반이지만 시니어강사로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닙니다. 앞으로 돌아올 시대는 시니어강사가 유망하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미리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모티콘은 워낙 레드 오션이 되어서 여러번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최근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티스토리에 구글 애드센스를 해보려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되도록 제가 사용한 것과 저의 경험이 녹아든 것들로 올리고 있지만 이제 시작하여 초보이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좌 듣기, 정보 찾기, 자격증 도전으로 시작해보세요!>

 

집 근처에 도서관 강좌를 들어보시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유튜브에서도 취업 관련 영상들이 많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으려면 일단 뭐라도 하나 시작을 해보면서 찾는 게 가장 빠릅니다. 시니어 강사과정의 경우에는 서울50플러스 센터에 모집과정들이 종종 올라옵니다. 

무료로 온라인 오프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강좌들도 많으니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필요해요!

제 티스토리에도 무료 수업 프로그램 정보를 올려놓았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저는 일단 큰 돈을 들이기 보다는 무료나 비용이 저렴한 강좌를 선택하여 시도해보시길 권장드립니다.

제가 쓴 글 중에는 제가 사용하고 있는 영어 공부 앱인 스픽과 클래스 101 구독제를 통해서 공부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모티콘 그리는 방법 등은 무료 유튜브 동영상들도 있고 보다 전문적으로 수강하고 싶다면 클래스 101을 추천드려요.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고 실업자시라면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하셔서 자기부담금이 적은 강좌부터 들어보셔도 좋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등은 취업에 유리한 부분이 많고 취업률도 높으니 꼭 도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6. 내가 돈을 벌고 싶게 된 이유

 

강사라는 직업은 저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저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달란트가 있다고 믿습니다. 장애아동을 보면서, 우리가 볼 때는 한없이 작고 부족해보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도 자신만의 능력과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들이 우리 내면에 하나 이상씩 있지만 그것을 발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강사로서 아이들, 성인들, 부모들, 노인들을 만나면서 저는 그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저의 성향과도 어울리고 제가 공감을 잘하는 편이어서, 사실은 상담을 하면서 보람되고 행복했지만 제 마음은 쉽지 않았었습니다. 강사라는 직업은 상담과는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여전히 경청과 소통이 중요하고 제가 가르치는 분야는 교육이기에 심리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연결의 개념이 저의 인생을 통해 돌아볼 때, 정말 와닿는 표현입니다. 

 

수많은 헛발질을 하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도 해보고 많은 부분 실패를 맛보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저를 성장시키고 회복탄력성을 주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실패를 통해서만 키워질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약자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자질들을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저와 제 가족들을 위한 것이 첫 번째고 두번째는 몸이 아프신 부모님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은 이유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외되고 연약한 분들에게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매달 또는 월급을 받게 될 때마다 조금씩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보람되고 행복감을 주는 경험입니다. 제가 한동안 벌이가 적어서 후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왔었는데 그때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돈을 벌고 싶다고요. 저도 후원을 꾸준히 하고 많이도 해보고 싶으니 돈을 좀 벌 수 있게 기회를 달라는 기도를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저의 평범한 경험담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무언가 하고 싶지만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막막한 분들이 있다면,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희망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곳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조차도 저에게 배움을 주고 다시 도전할 발판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구멍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치만 지금은 저의 사랑하는 삼남매가 저의 지지자이고 항상 고마운 남편이 든든히 서 주고 있어서 감사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작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만큼 큰 돈을 벌 수 없을지라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 용기와 힘, 위로를 준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축복이고 선물이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 인생이 반짝반짝 빛났고 은은하게 지속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인생의 위기와 고비, 아픔 속에서 함께 하셨던 주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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